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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휴먼다큐 사노라면.E686.250427.1080p.WANNA.mp4 | 2 G | 00:56:45 | 1920x10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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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차이, 임 관장의 내 사랑 내 곁에. 복싱체육관 관장과 라오스에서 온 아내 경기도 용인, 한적한 변두리에 한 복싱 체육관이 있다. 물주전자가 끓는 난로, 누군가의 땀으로 번들번들 얼룩진 사각의 링, 그리고 아마추어 복서 관원들의 빛바랜 사진 액자. 정겨운 모습이 인상적인 이 체육관의 관장은 임동휘(50세) 씨다. 중학교 1학년이던 열네 살 무렵, 우연히 복싱장 간판을 보고, ‘권투나 배워볼까’ 했다가 청소년 복서의 길도 걷고, 느지막이 체육관 관장도 하게 됐다. 동휘 씨의 좌우명은 ‘권투가 인생을 변화시킨다’. 왜소했던 소년을 건강미와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준 것도, 반백에도 삼십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최강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도, 다 권투 덕분이었단다. 하지만, 동휘 씨 인생의 가장 값진 변화는 라오스인 아내 컨낏(29세) 씨를 만났다는 것. 국적, 언어, 살아온 배경과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다를 뿐더러, 심지어 나이차도 무려 스물한 살이나 나는 두 사람. 올해로 결혼 3년 차, 깨 볶듯 살고 있는 두 사람은 어딜 가나 ‘원앙’ 소리를 듣고 있다. 서글서글한 복싱체육관 관장과 라오스에서 온 스물한 살 어린 아내. 이 운명 같은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 스물한 살 차이, 우리는 천생연분 4년 전, 동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낯선 댓글이 하나 달렸다. 라오스에서 살고 있는 한 아가씨가 남긴 댓글. 평소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컨낏 씨의 댓글이 인연이 돼,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비행기를 타고 컨낏 씨에게 날아간 동휘 씨는 첫눈에 내 사람임을 직감했다. 공부 욕심은 많았으나, 지독한 가난 탓에 직접 옥수수 농사를 지어 그 수확물을 팔아 공부를 마쳤다는 컨낏 씨. 1970년대 생인 동휘 씨와 1990년대 생인 컨낏 씨가 20여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세대차를 덜 느끼는 이유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학창시절부터 간판업체, 목공소, 견인차 등 안 해본 일이 없는데다, 남동생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는 동휘 씨. 매일같이 반찬 겹치지 않게 삼시세끼 도시락을 싸주는 손맛 좋고, 살뜰하며 명랑한 아내 컨킷 씨는 존재만으로도 선물이었다. 그래서, 동휘 씨 또한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취업을 희망했던 아내를 위해 직장을 직접 알아보고, 면접장에 동행하는 건 물론, 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라오스의 장인, 장모를 위해 부부의 한국생활을 영상으로 만들어 매일같이 온라인에 업로드 하고 있다. 부부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일 뿐, 사랑만 있으면 세월의 바다도, 언어의 장벽도 못 건널 게 없다. # 2세에 관한 서로 다른 생각, 그 결말은? 부부는 주말이면, 강원도 원주 산골에 있는 농막으로 향한다. 주중 복싱 체육관에서, 또, 국수공장에서 부지런히 일했던 부부의 주말 힐링지다. 해발 600미터 고지에 자리한 터라, 경운기 없이는 오를 수도 없고, 물 한번 쓰려고 해도 샘터까지 가서 물길을 뚫어줘야 하는 불편한 곳이지만, 부부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척척 장작을 만들고, 날래게 순댓국을 끓이는 컨낏 씨. 농막 한쪽에는 유채, 고수 등 고향에서 즐겨먹던 채소까지 심었다. 라오스 산골에서 자란 컨낏 씨에게 이곳 농막은 향수를 달래주는 가슴 벅찬 공간.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동휘 씨 역시, 부족한 솜씨지만 함께 농사를 짓고, 아무리 바빠도 농막 행을 거르지 않는다. 농막에서의 밤이 깊어갈 무렵, 동휘 씨가 아내에게 슬쩍 진심을 꺼냈다. 실은, 본인의 나이 때문에 어린 아내가 염려스러웠던 동휘 씨. 훗날 자신이 먼저 떠나고 외로이 남겨질 아내 생각에 2세를 가져보자 제안하는데, 어째 컨킷 씨의 표정이 묘하다. 육아를 도와줄 친정 부모님도 곁에 없고, 아직 자신의 한국어실력도 완벽치 않아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는 까닭이다. 한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때문에 아이에 관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부부. 그 결말은 어찌 될까?
묵집 엄마 복순 씨의 내가 사는 이유.
부부 아니고 친구! 25년째 한집살이. 부부 아니고 친구! 한 지붕 아래 25년째 같이 살고 있는 김상기(78) 씨와 정정임(78) 씨. 누가 봐도 한평생을 함께한 부부로 보이는데, 부부가 아니란다. 젊은 나이에 배우자와 사별 후 지내던 중 50대 중반에 만나게 된 두 사람. 정임 씨의 웃는 모습이, 상기 씨의 마음씨 착한 모습이 서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1년을 만나고 살림을 합치게 된 이들, 그런데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가 아니고 친구 사이라고 한다. 25년을 함께 살면서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 봄나들이 가는 날, 이게 웬 날벼락?!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외출 준비 중인 두 사람. 밭에서 캔 머위를 팔고 나간 김에 데이트하려 트럭에 시동을 걸어보는데, 이게 웬일, 시동이 걸리질 않는다. 밭에 갈 때도, 시내에 갈 때도 차가 없으면 꼼짝 못 하는 상황. 대체 뭐가 문제인지 차를 살펴보는데, 뜯긴 선을 발견했다. 범인은 다름 아닌 천방지축 강아지 용수! 트럭 밑에 들어가 선을 잘근잘근 씹어댄 것이었다. 머위를 팔아야 하는데 차는 움직이질 않고 난감한 상황. 급히 긴급출동 차를 불러보는데. 여자 친구 정임 씨는 화가 단단히 나서 용수를 꾸짖고, 용수를 데리고 온 남자 친구 상기 씨는 말이 없고. 과연 두 사람은 무사히 외출할 수 있을까? # 여자 친구에게 늘 빚진 마음 “우리 집에 들어와 같이 살아” 정임 씨의 프러포즈에 그날로 바로 정임 씨 집에 들어왔던 상기 씨. 아무런 짐도 없이 몸만 들어왔다. 당시 재산이랄 것도 없는 상태에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해있었지만 그런 상기 씨를 그 자체로 받아준 정임 씨였다. 25년을 살면서 늘 이점이 마음에 걸렸던 상기 씨는 큰 결심을 했다. 정임 씨 집에 들어오기 전 살던 집을 팔아보려는 것. 한 달에 한 번씩 들러 관리만 해주고 있으니 차라리 집을 팔아 정임 씨에게 주는 건 어떨까, 싶은 마음이다. 부동산에 시세를 알아본 후 여자 친구 정임 씨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해보는데, 결사반대하는 정임 씨. 상기 씨는 집을 팔아서 노후에 편하게 지냈으면 싶은데 정임 씨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철부지 연하남을 구한 명랑 아지매.
열혈 아빠와 연근 남매의 좌충우돌 후계 수업. 김제의 열혈 연근 농부 가족 드넓은 김제 평야에서 연근 수확으로 바쁜 열혈 농부 김영훈(64) 씨. 농부가 땀으로 일군 땅은 정직하다는 믿음으로 35년을 한결같이 흙만 보며 살아온 천생 농부다. 그 가르침을 받아 대를 잇겠다며 11년 전 귀농한 아들, 김기남(30) 씨. 어릴 적엔 농사일로 고생하는 부모를 보고자라 농부만큼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시로 떠나 조선소에 취직했지만 보이지 않는 앞날. 그때 연봉 1억 원을 만들어준다는 아빠의 제안에 귀농해 함께 연근 농사를 짓고 있다. 아빠와 의견 차이로 부딪힐 때도 많지만, 고된 농사일을 열심히 배우는 아들. 엄마 김계숙(61) 씨는 마냥 기특하고 든든하다. 이런 와중에 9개월 전 서울 미용사 일을 그만두고 내려온 애교 만점 큰딸, 아름(36) 씨. 사고로 다친 엄마를 돕겠다며 내려와 인터넷 판매에 남동생 잔심부름까지 도맡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마음 든든한 연근 부부다. # 65세 정년퇴직을 선언한 농부 아빠! 원래 쌀농사를 지었던 영훈 씨와 계숙 씨. 가을이면 방아 찧은 쌀을 트럭에 싣고 서울로 올라가 집집이 팔러 다녔었다. 그러나 쌀값 폭락으로 느낀 한계. 3년간 대체작목을 찾아 나섰고, 김제에서 처음으로 연근 농사에 성공했다. 그 뒤로 연근 칩 가공 판매도 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오토바이 배달을 가다가 사고를 당한 계숙 씨. 6개월간 병원 입원을 할 정도로 큰 사고였다. 평생 고생만 한 아내의 사고로 큰 충격에 빠진 영훈 씨. 65세가 되면 모든 농사는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아내와 추억여행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정년퇴직까지 남은 기간은 1년 9개월. 그 안에 아들을 제대로 된 후계자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미덥지 않은 아들. 툭하면 연근 밭을 비우고 혼자 양파 농사를 짓겠다며 딴짓이니 잔소리만 늘어난다. 아들에게 농사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줘야겠다 마음먹은 영훈 씨. 농사 훈련 삼아 아예 자리를 비우기로 계획한다. # 연근 남매의 좌충우돌 후계 수업 쌀농사에 연근 수확, 가공까지 할 일이 태산인데 2박 3일간 제주 여행을 떠난 영훈 씨와 계숙 씨. 남매끼리 농사일을 오롯이 책임지고 운영해 보라는 뜻이었다. 누나 아름 씨와 함께 둘만 남게 된 기남 씨. 걱정이 밀려들지만, 이번 기회에 자신의 농사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비료를 주던 도중 추락한 드론. 연근을 옮기던 크레인 줄이 끊어져 누나가 다칠 뻔한 등 돌발 사고가 이어지고, 부모님의 빈자리는 점점 커지는데…. 과연 연근 남매는 무사히 후계 수업을 마칠 수 있을까?
옹기장이 삼대와 대장 영란 여사.
퇴직 50일 차 남편과 농부 아내의 딸기밭 로맨스.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 아내, 경찰로 36년 생활을 한 남편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남이자 장손인 김영철 씨(59)는 아버지가 계시던 영주로 내려왔다. 자신이 지은 집을 팔지 말아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았던 아내 이현주(55) 씨도 12년 전 남편을 따라 귀농을 했다. 아버지의 집 때문에 내려왔지만, 시골에서 살아본 적 없는 부부에게 귀농은 좀 막막했던 상황.. 결국, 남편은 서울에서 일하던 대로 경찰 관직을 계속했고 아내는 얼떨결에 농부가 되었다. 하지만 귀농은 생각만큼 녹록지가 않았다. 시아버지가 터를 잡은 밭에서 아내는 배추, 수박 등 다양한 농사를 시도했지만, 줄줄이 실패하고 만다. 농사를 시작하고 수입 하나 내지 못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아내는 이후 죽도록 공부까지 하면서 이 상황을 극복해나갔고 이런 노력 끝에 딸기 농장은 이제야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이제 좀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가 싶은 아내 현주 씨.. 그런데 작년 12월 31일, 남편이 정년퇴직을 1년여 앞두고 명예퇴직을 하고 농장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부부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 퇴직한 남편, 나도 이젠 좀 쉬고 싶어 경찰 생활 36년, 매일 수많은 민원 처리로 밤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했던 영철 씨, 이젠 몸도 지치고 힘들어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결심했단다. 퇴직 후 더는 밤낮없이 지구대에서 일할 필요가 없게 되자 이제는 편안히 쉬고 싶은 남편, 하지만 현실은 이런 영철 씨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한창 바쁜 딸기 농장에서는 일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 영철 씨는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트래킹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실망한다. 퇴직 후 배달에 장날 판매, 체험 프로그램 보조까지, 현직에 있을 때보다 할 일이 더 많아지니 불만이 쌓여간다.. 남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할 일이 태산인데 여행을 가고 싶다고 조르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아내 현주 씨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 결국, 마음과는 다르게 계속 잔소리가 나온다. 퇴직 휴가를 달라는 남편과 가려면 딸기 수확 끝나고 가라는 아내.. 퇴직 후 24시간 붙어있게 된 부부는 오늘도 투닥투닥 소란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 퇴직 50일 차 남편과 할 일이 많은 아내의 좌충우돌 일상 남편 영철 씨가 1년 일찍 퇴직하게 된 것은 나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딸기 잎과 줄기를 해결하기 위해 흑염소를 키우게 됐는데 이게 나름 용돈 벌이로 쏠쏠하다. 퇴직 후 흑염소나 키우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싶었던 영철 씨.. 그런데 이 흑염소들이 요즘 말썽이다. 하우스 옆 우리에 있던 흑염소들이 틈만 나면 뛰어나와 하우스에 들어와 딸기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인데.. 결국, 흑염소 담당 남편은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문이 열렸는지 흑염소 떼가 하우스로 들어오게 되고 이를 본 부부는 놀라 흑염소를 쫓아내며 결국 큰 소리를 내고 마는데... 퇴직 후 좌충우돌 일상을 맞이하게 된 부부.. 딸기밭 부부는 과연 인생 2막을 잘 열어갈 수 있을까?
꽃할배 남편의 '댄서의 순정'.
지리산 장금이와 백발의 슈퍼맨. 사랑 하나 믿고 청학동에 온 장금이 해발 800m 지리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청학동. 예로부터 도인들이 모여 지내는 곳으로 알려진 오지 마을이다. 이곳에서 산골 식당을 하는 김옥주(65) 씨와 엄대후(74) 씨 부부. 30년 전, 도시에서 한정식집을 하던 옥주 씨가 우연히 토굴에서 도를 닦던 대후 씨를 만나면서 이들의 인연이 시작됐다. 독신을 꿈꿨던 옥주 씨가 ‘작은 눈에 눈빛만 반짝’이던 대후 씨에게 운명을 느낀 것. 그녀는 사랑 하나 믿고 도시의 삶을 버리고 청학동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사방이 숲이라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자 남편과 함께 나물을 뜯어 생계를 꾸렸다. 더구나 청정 자연 속에 살다 보니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생긴 옥주 씨.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진주 등지의 요리학교와 연구회로 달려가 음식을 배웠고,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6년 전 ‘한식의 대가’로 선정됐다. 이후 남편의 든든한 지원 아래 지리산 ‘장금이’로 거듭나고 있다. # 청학동 도인의 순애보 젊은 시절 도장을 파다가 우연히 명리학을 알게 된 대후 씨. 세상의 이치를 깨치기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다 지리산 청학동에 터를 잡았다. 아내가 산골로 오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도인에서 생활인에서 변모한 대후 씨. 산기슭에서 벌을 키우고, 산양삼 농사도 시작했다. 열심히 산을 누비지만, 돈벌이는 신통치 못한 편. 괜히 도시 사람을 산골로 불러 고생시킨 듯해서 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더구나 지난해 병충해로 벌통 300개를 잃은 대후 씨. 입춘이 지나자마자 매일 양봉장에 출근해 자식처럼 벌을 돌보지만,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슈퍼맨처럼 쏜살처럼 달려간다. 그는 요리 보조부터 나무꾼과 수리공까지 자청하지만, 어째 어딘가 허술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라 이래저래 힘에 부치는 상황. 그러다 보니 자꾸만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한다. # 부부의 아픈 손가락 펑펑 내린 눈을 치우느라 고생해도, 산골 매서운 찬바람에 시달려도 늘 웃음꽃을 피우는 부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만나 가정을 이룬 만큼, 서로가 너무나 애틋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 이웃집 딸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옥주 씨. 10년 전 여름날 계곡에서 사고로 잃은 막내딸이 생각나서 마음이 울적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운명을 원망하며 한동안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던 그 시절. 꿈에서 만난 막내딸의 꾸지람에 ‘절대 울지 않겠다’라고 마음먹었던 그녀다. 하지만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소란스러운 마음을 달래고자 일거리를 찾아 나선 그녀. 남편은 그 곁을 맴돌며, 부지런히 일을 돕는다. 그런데 자꾸만 실수하는 바람에 아내의 잔소리가 쏟아지는데...! 과연 남편은 아내를 슬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꼬꼬댁 사위와 까칠한 장인의 아찔한 동고동락!
감자 농부 9남매네 겨울방학이 돌아왔다. 웃음도 울음도 아홉 배! 김제 9남매 다둥이 가족 온종일 세탁기가 돌아가는 집. 하루에 아홉 벌은 기본이고, 이틀만 쌓여도 빨랫감이 스무 벌은 족히 넘는다. 정윤(중1), 서윤(초6), 태우(초4), 리윤(초2), 아윤(초1), 무영(7세), 민호(6세), 수빈(4세), 재범(19개월)까지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려 아홉. 김미정(39세), 이승헌(40세) 씨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자식을 아홉이나 둔 다둥이 엄마, 아빠다. 시아버지까지 함께 살고 있어 식구 수만 열두 명. 전북 김제 감자하우스 들판에 자리한 이들의 집은, 눈 뜨는 순간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음악에 심취해 뱃가죽을 내놓고 춤을 추는 일곱째, 좀비 놀이 중이라며 뻥뻥 발차기를 주고받는 셋째와 다섯째, 발레리나가 꿈이라는 먹성 좋은 넷째는 부엌에서 모닝 빵을 시식 중이고, 여섯째는 서랍장을 스케치북 삼아 온갖 낙서를 하며, 여덟째와 아홉째는 미정 씨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먹이고 있다. 이 난장 중에도 둘째는 게임 삼매경이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첫째는 담요로 덮인 나만의 벙커에 들어가 소란한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있다. 비명과 웃음, 그리고 울음이 끊이질 않고, 하루에 “엄마!” “아빠!” 소리를 귀 따가우리만치 듣지만, 아이들이 많아 다복하다는 부부. 부부의 삶의 이유이자, 행복의 근원은 개성 넘치는 9남매 아이들이다. #자식 농사 잘 짓고자, 감자 농부가 되다 새하얀 얼굴에 오밀조밀 잘생긴 이목구비. 미정 씨가 본 승헌 씨의 첫인상이었다. 반면, 승헌 씨는 뭐든 시원하게 웃어넘기는 타고난 낙천주의자, 미정 씨를 만나자마자 운명의 짝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만난 지 4개월 만에 첫 아이를 가졌다. 당장 아이를 위한 좋은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단 생각에 둘은 결혼식을 미루고, 승헌 씨는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릴 적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고, 군 제대 후에는 정신병원, 소각장 등 힘든 일도 마다치 않았을 만큼 책임감과 생활력이 남달랐던 그였다. 둘째아이 임신 7개월 무렵에야 결혼식을 치렀지만 그도, 아내도 아쉽지 않았다. 좋은 가정을 소망했고, 부모가 짊어져야 할 짐도 기쁘게 감당할 뜻이 있었던 까닭이다. 부부는 경제적으로도 자식들을 여유 있게 뒷바라지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다 고향에 내려와 농부가 됐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감자농사를, 봄부터 가을까지는 벼농사를 짓는 이모작을 한다. 그 사이 셋만 낳아 잘 길러야지 했던 자식들도 아홉이 됐다. 개인시간이 없는 게 더러 불만스럽지만, 엄마고 아빠기에 또 힘을 내야 한다는 부부. 감자농사보다 어려운 9남매 자식농사에 기꺼이 청춘을 바치고 있다. #그날이 돌아왔다! 위기(?)의 겨울방학 독감이 휩쓸고 가면서 아이들 모두가 병치레를 했는데,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맞은 것이다. 농사일을 미룰 수 없는 승헌 씨 부부가 밭에 가고, 집 안에선 아이들만의 난장이 벌어진다. 여기저기 과자 부스러기를 떨구고, 방학숙제는 나 몰라라 이불 안에서 꼼짝 않거나, 네일 아트 놀이로 정신없는 동생들. 보다 못한 첫째가 나섰다. 청소기를 밀고 난 뒤, 이불에서 동생들을 끄집어내 구구단을 가르치고, 방학숙제까지 봐주는데 동생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유치원에 갔던 동생들까지 돌아오자 일거리는 배가 된다. 젖먹이 막둥이는 첫째만 찾아대니 누나 노릇하랴, 엄마 노릇하랴, 열네 살 인생이 참 쓰디쓰다. 방학 때마다 삼시세끼 차리랴, 시내 마트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오가며 간식 사 나르랴, 엄마도 고단하긴 마찬가지. 누구보다 큰딸의 속을 잘 아는 엄마는 첫째를 토닥이고, 아빠는 시내 중학교 입학을 앞둔 딸아이를 차에 태우고 등굣길을 알려주며 마음을 전한다. 시내에 나온 김에 문구류도 사줄 참인데, 따라나선 동생들이 더 신났다. 통장이 말 그대로 ‘텅’장이 되자, 아내에게서 한소리가 쏟아지는데... 첫째도, 엄마, 아빠도 진땀 흘리게 되는 이 위기의 겨울방학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열정맨 남편의 꿈은 현실이 된다.
소리 없는 세상에서 들린 기적. 7개월 찬별이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제 막 배밀이를 시작한 7개월 찬별이. 여느 부모가 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아들이 평범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초보 아빠 이대원(32) 씨와 엄마 이은혜(32) 씨에겐 더 간절하다. 찬별이의 작은 귀에 달려있는 커다란 보청기 때문. 생후 3주 차에 난청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후 2개월 때부터 보청기를 착용 중이다. 하지만 찬별이의 경우 일상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고도 난청이기에 보청기만으론 청력 상태가 나아지진 않는 상황.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인공와우 수술이다. 인공와우를 이식하면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해져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정도. 그래서 수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찬별이네 가족. 과연 찬별이는 인공와우 수술 후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될 수 있을까? # 소리를 찾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준후 22개월 준후는 눈뜨자마자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공와우를 착용하는 것. 그 순간부터 준후는 세상의 소리를 듣고 엄마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신생아 검사에서 준후의 난청 판정이 믿기지 않았던 엄마 오정원(35) 씨. 절망적인 상황은 인공와우를 만나고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던 아이가 인공와우 수술 후 또래 아이들처럼 듣고 말하며 평범하게 성장하는 중이다. 지금 준후 가족에게 남아있는 숙제는 세상의 시선을 극복하는 것. 아이의 귀에 붙어 있는 인공와우가 남들에게 선입견을 품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큰 엄마. 준후가 커갈수록 자신의 장애에 대해 부끄러워 말고, 지금처럼 밝고 당당하게 지냈으면 한다고 한다. # 인공와우 수술 후 특수교사를 꿈꾸는 대학생 또박또박 발음에 신경 쓰며 발표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대학생 조아영(21) 씨. 그녀가 특히 발음에 신경 쓰는 이유는 현재 왼쪽 귀에는 인공와우, 오른쪽 귀에는 보청기를 착용 중이기 때문. 4살 때 갑작스레 난청 판정을 받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며 꽁꽁 숨어버렸던 아이는 인공와우 수술 후 다시 소리를 듣게 되며 일상을 서서히 되찾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특수교사를 꿈꾸는 대학생이 된 아영 씨. 자신처럼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자신을 통해 다시 꿈꾸게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인공와우 수술 9년 차, 아영이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 어느 날 갑자기 소리를 잃어버린 배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연극 연습실에서 누구보다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배우 지혜연(37) 씨. 그녀의 양쪽 귀에는 인공와우가 부착돼 있다. 성악을 전공 중에 있던 대학 4학년 때 앞으로 노래를 못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유전성 인자가 뒤늦게 발현해 난청 진단을 받은 것이다. 당장 보청기를 착용했지만 노래하던 혜연 씨는 더 이상 정확한 음을 낼 수 없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돼준 건, 인공와우. 다시 소리를 듣고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 뮤지컬 배우에서 연극배우로 12년째 활동 중이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면 연기도 노래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했던 우려와 달리 그녀에게 연극배우라는 새 삶을 안겨줬다.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향해 오늘도 연습 중이다.
다문화 2세대의 홀로서기.
천생 맏딸의 내겐 너무 달달한 가족
우렁각시 깡숙 씨와 추도 그 남자.
북에서 온 억척 모녀 오늘도 일없습니다. 소문난 북한 음식점의 특별한 모녀 탈북하여 인천에서 북한 음식점을 운영 중인 딸이자 사장 최은옥(46세) 씨와 이런 딸을 돕는 엄마 김영순(74세) 씨, 엄마는 2011년에, 딸은 2012년에 자유의 땅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이들 모녀에게는 자유를 찾아서라는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이들은 살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중국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던 어머니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 CD를 북한에 있는 막내딸에게 보낸 게 들키게 되면서 막내딸이 국가 보위부에 체포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막내딸은 어머니가 있는 중국으로 피했고 이를 시작으로 둘째 딸이, 그 다음으로, 큰 딸인 은옥 씨가 마지막으로 탈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녀의 한국 생활, 북한에서부터 생활력 하나는 뒤지지 않았던 어머니와 큰딸 은옥 씨는 한국에 들어온 그다음 해인 2013년, 북한 음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열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미 고향의 맛으로 탈북민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식당. 한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도 모녀는 최선을 다하며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 하루도 쉬지 않는 억척 사장 딸과 잔소리꾼이 된 엄마!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식당을 운영하며 생업 전선에 뛰어든 은옥 씨…. 처음에는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았다. 그래서 더 쉬지 않고 일을 해왔는데 이런 은옥 씨에게도 요즘 걱정이 생겼다. 가겟세에 인건비. 여기에 오르는 물가, 대한민국 자영업자로서의 고충이 남 일이 아니게 됐다. 여기에 작년부터 당뇨가 생겨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 할 상황, 하지만 직원들에게 일을 맡길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부터 나와 밤늦게까지 365일 가게에 나와 일을 하고 있다. 힘이 들어도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겠다며 하루도 쉬지 않는 은옥 씨... 이런 딸이 걱정돼 엄마는 딸에게 건강을 생각하고 일하라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무너지지 말자는 결심으로 오늘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은옥 씨. 엄마는 이런 은옥 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좋지 않은 건강에도 매일 딸의 식당을 찾아 일을 돕는다. # 쉼 없는 인생은 이제 그만! 딸에게 내리는 엄마의 특단의 조치! 오늘도 당뇨인 딸을 위해 아침을 챙겨온 엄마 영순 씨.. 딸 은옥 씨의 오늘도 엄마의 정성을 먹고 힘을 내 본다. 하지만 이내 가게 한 달 지출 내역서를 보고 힘이 빠지는 은옥 씨.. 그런 가운데에서도 힘을 내보지만 피곤한 몸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날 오후, 계속되는 무리한 작업에 그만 음식을 만들다 잠에 들고 만 은옥 씨..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안쓰러운 더해지고 결국 마음을 먹고 메뉴를 줄이자는 특단의 제안을 한다. 엄마의 제안에 고민에 빠진 딸 은옥 씨.. 과연 은옥 씨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될까?
힘내라! 씩씩한 우리 며느리.
천하장사 호순 할매와 대봉감 효자. 일 앞에선 언제나 천하장사인 어머니 전라남도 곡성, 대봉감이 주홍빛으로 익어가자, 산골 마을에서 가장 바쁜 이호순 (84세) 어머니. 일만 붙들면 천하장사가 되는 그녀는 작은 체구지만, 묵직한 감 박스에 20kg이나 되는 퇴비를 혼자서 척척 옮긴다. 그 옛날 삼 형제의 ‘엄마’가 된 그 순간부터 세상 어떤 일도 두렵지 않았다는 호순 씨. 벌채업 하는 남편을 따라 산을 누볐고 장정도 힘들어하는 숯까지 구웠다. 오로지 자식만은 좋은 세상을 살게 하리라는 열망 하나로 종종걸음친 세월. 그 덕분에 산골 마을에서 처음으로 아들 셋 모두 대학 공부를 시켰지만, 어머니는 허리가 ‘기역’ 모양으로 굽어갔다. 20여 년 전, 보다 못한 남편이 호순 씨를 위해 산골에 대봉감을 심었다. 철마다 텃밭을 쫓아다니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니, 일품이라도 줄일 요량에 일 년에 한 번 수확하는 감밭을 마련한 것. 그 덕분에 해마다 대봉감을 수확하는 11월이 되면 일 도와주러 온 자식들로 시골집이 시끌벅적하다. # 대봉감처럼 든든한 열혈 효자 2년 전 가을,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 남은 호순 씨. 인생 동반자와의 이별로 힘들었지만, 틈날 때마다 찾아오는 둘째 아들 덕분에 기운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서울로 유학 간 장남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왔던 둘째 김정하(60) 씨. 1년 중 100일 이상을 고향 집에서 보낼 정도로 그 효심이 애틋하다. 2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의 마지막 체온을 부여잡고 어머니만은 허망하게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지키고자 400여 평 산골 밭에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리자, 아내와 함께 매주 출근 도장을 찍는 아들. 일을 붙잡고 사는 어머니를 말리고, 밤마다 허리가 아파서 끙끙거리는 어머니를 돌봤다. 더구나 자존심 강한 어머니의 주머니 사정을 챙기고자, 직거래로 감 판매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이런 열혈 효자를 남편으로 둔 탓에, 감밭에서 한 계절을 보내는 며느리 이정영(54세) 씨. 분명 힘들고 고단할 텐데도, 그런 내색이 없이 묵묵히 일만 한다. 그런 며느리가 고맙고 또 미안한 어머니. 뭘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도, ‘괜찮다’며 사양하니 오히려 애가 탄다. # 감 수확을 끝내자마자 아들의 폭탄선언 올해는 폭염으로 농사짓기 어려웠다는데, 호순 씨의 감밭은 그야말로 풍년이다. 남편 떠난 빈자리를 보려니 서글펐던 그녀가 쉬지 않고 밭에다 퇴비를 뿌렸기 때문. 그래서 아들 정하 씨는 주렁주렁 열린 대봉감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 아프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가 홀로 20kg이 되는 퇴비를 끌고 비탈진 언덕에 올랐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머니께 일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해도, 마음이 편치 않은 아들. 감 수확을 끝낸 어느 날, 내년에 회사 그만두고 어머니 곁에 눌러살 거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아들 마음이야 고맙지만, 며느리에게 너무나 미안한 어머니. 안 그래도 팔자에 없는 농사짓느라 고생한 며느리가 독수공방까지 하게 됐으니, 어머니의 고민이 점점 깊어져 가는데..!
탐나도다! 요망진 제주 8남매 어멍과 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