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 소 할배는 아내 없이 못 살아.
# 소와 동고동락하는 노부부 높이 1000m가 넘는 면봉산과 보현산 자락의 분지에 있는 포항의 오지, 두마마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정용화(77세), 정분도(76세) 씨 부부는 54년째 소와 함께 살았다. 부부가 결혼한 이듬해, 단돈 33만 원으로 들인 소 한 마리.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아이들 교육비가 급할 때도, 살림이 막막할 때도 언제나 소가 부부의 든든한 힘이 됐다. 그야말로 살림 밑천이자 평생의 복덩이라서 더욱 소에게 정성을 들이는 부부. 새벽과 저녁으로 밥을 챙기느라 먼 길 외출도 마다했고, 축사도 늘 깨끗이 손질했다. 소를 잘 돌보려고 굴착기며 농기계까지 직접 배운 용화 씨. 철마다 옥수숫대, 참깻대 등을 구해와서 특식으로 먹인다. 그 사랑 덕분에 부부네 70여 마리 소들은 유난히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 밭일하다가도 오후만 되면 사라지는 남편 부부는 축사에서 모은 거름으로 고추 농사를 짓는다. 워낙 땅심이 좋아, 올여름 폭염 속에도 고추는 풍년이다. 수확철을 맞아 종종걸음으로 밭을 누비는 아내. 할 일이 태산이라 마음이 급한데, 남편은 오후만 되면 놀러 간다고 사라지기 일쑤다. 젊을 땐 화도 내고 다툰 적도 있었지만, 12년 전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아내는 더는 원망할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 그래서 남편이 놀러 가도 모르는 척 눈감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고양이 ‘애옹이’를 풀어주고 놀러 가는 바람에 애지중지 기른 배추 모종이 망가지자, 아내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럼에도 밭일을 멈추고 남편 밥을 챙겨주러 가는 아내. 부부의 정이 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 소의 난산에 애태우는 남편. 이대로 계속할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부터 축사 앞을 서성이는 용화 씨. 축사에서 나고 자란 소가 첫 출산을 앞두고 있다. 간혹 혼자서 새끼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곁을 지키는 것이다. 산통이 4시간째 이어지자,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용화 씨. 결국 밧줄로 올가미를 걸어 산도에 걸린 송아지를 꺼내지만, 이미 숨은 멎어 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축사를 떠나지 못한다. 그날 저녁, 분도 씨는 남편을 위해 따끈한 국수를 끓인다. 소는 해마다 사고로 잃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떠나보내는 건 늘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랴. 돌봐야 할 다른 소들이 있으니, 얼른 기운 차려야 한다. 국수가 맛있다며 웃는 남편을 보자 분도 씨의 마음이 비로소 놓인다. 며칠 뒤, 가축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생후 7개월 된 송아지를 트럭에 싣는 남편. 힘에 부쳐 애쓰는 모습을 보자, 아내의 마음이 무겁다. 아무래도 내년부턴 먹이는 소를 줄여야 할 터. 소라면 자다가도 펄떡 일어나는 남편을 어떻게 설득할지, 걱정이 앞선다.